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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... -26

소설-우리는 2010/08/31 12:38 Posted by 피안™
 호수를 통과한 서늘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와 그녀의 머릿결을 흩날렸다. 한 발짝 뒤에서 그녀를 조용히 따라가고 있던 현식의 입에는 살며시 미소가 걸렸다. 같이 걷는 것 보다 뒤에서 걷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걸 그는 처음 알게 되었다. 하지만 곧 정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고 현식은 자신의 즐거움을 잠시 포기한 채 정연의 옆으로 다가섰다. 그녀와 가까워 질 수록 두근거리는 그의 심장은 이미 통제를 벗어난지 오래였다.

 [I sing you sing ~ ♬]

 갑자기 정적을 깨고 울려대는 벨소리에 놀란 정연은 황급히 자신의 가방을 뒤적였다. 발신번호를 본 정연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진 채 현식을 바라보았다. 현식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. 잠시 망설이던 정연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.

 [여보세요.]
 [어. 나야.]
 [네가 왠일이야?]
 [목소리 꽤나 차갑다. 하긴 전혀 반갑지는 않겠지]
 [나 지금 밖이야. 할 말 있으면 빨리 해.]
 [너한테 할 말이 아닌 건 알지만 너 밖에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걸었다.]
 [뭔데?]
 [서인이... 남자가 생겼어.]
 [...]
 [들었어?]
 [어. 근데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. 듣고 싶지도 않고 들을 필요도 없어.]
 [그냥 너라면 이해해 줄 것 같아서.]
 [... 끊어. 나중에 전화할게.]
 [그래. 알았다.]

 전화를 끊고 난 정연의 얼굴엔 그녀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. 그리고는 조용히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. 현식은 너무 궁금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접어둔 채 그녀의 뒤를 따라 걸었다. 몇걸음 이나 걸었을까? 정연은 뒤를 돌아보며 현식에게 말했다.

 [현식씨 미안한데요...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요.]
 [그래요. 제가 오늘 정연씨에게 보여드리고, 하고 싶었던 것은 모두 했으니 이제 가요.]
 [미안해요. 그래도 좀 더 같이 있어야 하는데.]
 [괜찮아요. 전 정연씨에게 편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. 그러니 부담스러워하거나 미안해 하지 마세요.]
 [네. 고마워요.]

  데려다 준다는 현식을 겨우 만류한 채 버스에 오른 정연은 비어있는 자리에 앉았다. 그녀의 머리속은 전화를 걸어온 성혁의 생각으로 가득했다. 서인에게 남자가 생겼다니 그건 정말 상상 못했던 상황이었다. 정연이 꽤 오랫동안 그녀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왔지만 서인이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건 본적이 없었다.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성혁은 더 서인을 포기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. 자신의 마음을 알면서도...

 버스에서 내린 정연은 전화기를 들고 멈춰섰다. 화면에는 성혁의 이름이 떠있었지만 정연의 손가락은 쉽사리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했다. 그러다가 입술을 꽉 문 정연은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귀에 가져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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